2015, 3,15 주일강론
본문 : 삼하15:13-18
말씀 : 라인권목사
고난은 무엇을 빼앗고 잃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재산도 빼앗으려고 하고, 사업도 빼앗으려고 하고 심지어 건강과 생명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고난에 직면하면 사람의 본성은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걱정근심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생존본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은 지키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지키려고 하는 시도들이 더 크고 많은 것을 잃게 합니다. 그래서 진즉 포기하고 내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에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빨리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이 잃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그랬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올 때에 다윗은 왕위와 왕궁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맞서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즉시 내어주고 요단 동쪽으로 피했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즉시 예루살렘을 내주고 피했을 때 모든 것을 잃는 같았지만 결과는 압살롬 하나만 빼고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다윗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잃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얻게 하고, 빼앗긴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지킨 승리를 가져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에 직면하면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지키는 것만을 능사로 알고 한사코 지키려고만 합니다. 왜 우리는 고난에 직면했을 때 지키는 것만을 능사로 알고 내주지 못합니까?
왜 지키는 것만 능사로 알고 내주지 못할까?
다윗이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도망치기로 결정했습니다만 막상 이 결정을 실행하여 압살롬에게 예루살렘을 내주고 도망치는 것은 망설이며 지키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어주어야 할 고난의 순간에 내어줄 것을 내주지 못하고 지키려고 하는 이유를 보게 됩니다.
첫째, 예루살렘이 가지는 신앙적인 상징성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의 단순한 도읍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선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왕상8:29) 그래서 다윗은 여기에 성을 쌓고 법궤를 모시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성전부지로 준비해 둔 곳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다윗의 추구는 예루살렘이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이 되게 헌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을 잃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자신의 신앙이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난으로 성전에 나지 못할 때에 자기가 땅 끝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시61:2)
이렇게 내 인생에서 하나님께 대한 헌신으로 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업이나 일이 아니라 내 신앙 그 자체입니다. 그것을 잃는 것은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으신 것과 같이 여겨지고, 신앙의 실패와 같이 여겨집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지키려고 하다가 더 큰 고난을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경험과 능력 때문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뼈가 굵은 역전의 용사요 명장입니다. 그에게는 요압을 위시하여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전쟁에 익숙한 동지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예루살렘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치려고할 때에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할 정도입니다.(삼하5:6) 한 사람이 천을 지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루살렘을 지키면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대를 가지게 하고 미련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있는 유리한 조건과 자신의 축척된 경험과 능력이 지키면 지킬 수도 있다고 여기게 합니다. 아예 전무면 포기가 쉬운데 있기 때문에 막연한 낙관과 미련을 가지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내어주어야 할 때에 내어주지 못하고 지체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키려고 하다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다른 사람까지 피해가 가게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루살렘은 다윗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며 다윗의 소망과 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비로소 여부스 사람에게 빼앗아 시온산에 성을 쌓고 다윗성이라고 부른 곳입니다.(삼하5:6-9) 이 피와 땀이 예루살렘입니다. 다윗은 이곳이 왕궁을 짓고, 법궤를 모시고, 여기에 성전을 지어 그리스도를 모실 소망과 비전을 둔 곳입니다. 남다른 애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미련이 큽니다. 이곳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곳을 포기하고 내주기에는 너무 미련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주어야 할 때 망설이고 지체하여 더 손해를 키웁니다.
이렇게 우리도 내 피와 땀이 스며서 애정이 있는 것, 내 인생의 소망과 비전이 깃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아서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이것저것 다 끌어들이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끌어 들어서 지키려고 하다가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돕는 이들을 함께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이 믿음이 필요하다면 내어주는 것은 더 크고 깊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내 고난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어 주어야 할 고난임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그리고 내어줄 것을 지키지 않고 내어 줄 수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내어줄 것을 지키지 않고 내 줄 수 있게 하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를 자기 안위보다 우선 하는 믿음이 내어줄 수 있게 있게 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포기한 것은 자기 안위보다 백성과 공동체의 안위를 우선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이 고난 앞에서 자기 안위만 우선했다면 우려한대로 백성들이 압살롬 편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백성을 위하여 내어 주는 믿음이 다윗 자신은 물론 백성과 예루살렘을 지키게 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이란 이 기준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기 안위가 우선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의 안위를 기준하면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해서 내줄 때는 포기하고 내줄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 자기도 지키고 이웃과 공동체도 지키는 하는 승리가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전과 덕을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하는 믿음이 내어줄 수 있게 했습니다. 성막을 제단과 법궤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내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따라오는 제사장들과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냅니다.(25) 이 믿음이 내어 주었지만 잃은 것이 없게 하고 진정으로 지키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환난 앞에 믿음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앞에서 하나님과 교회와 덕을 기준 하는 믿음으로 행합시다. 그래서 지키는 것이 덕이라면 죽어도 지킬 수 있고, 내어주는 것이 덕이라면 미련 없이 내어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온전하게 내어주는 것이 온전하게 지키고 온전하게 소유하게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지키려고 싸웠으면 지켜도 잃은 것이 많고 상한 것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 온전히 내주었기 때문에 돌아올 때 온전히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방법의 대가였습니다. 사울에게 이 방법으로 승리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과 꼭 같은 방법으로 대적해서 왕위에 올랐다면 다윗의 정통성을 크게 상처받고 의심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내어주었기 때문에 온전한 왕위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 속의 믿음이란 내어주므로 얻는 것이요, 포기하므로 지키는 것이요, 싸우지 않고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법칙을 새겨두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은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어주어야 할 것은 처음부터 내어주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냉철하게 정확히 상황을 직시하게 하여 포기할 것을 포가하게 합니다. 이 믿음이 무엇이 선이고 덕이며 진짜로 지키고 얻는 길인지를 파악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어주어야 할 때에 미련 없이 내어주게 합니다. 이 믿음이 더 큰 환난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이 믿음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함께 망하게 하는 고난을 방지해줍니다. 이 믿음이 싸울 일을 싸울 자리에서 싸우게 하여 진정으로 승리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내어줌으로 얻게 하고 온전히 지키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의 의미는
내어줄 때 내어주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내가 정당하고, 내 피와 땀의 결정이요, 내 소망과 미래인 것을 이웃과 공동체 하나님과 교회와 덕을 위하여 내주는 것은 고난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당하면 그때 일반적인 고난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되고, 이것이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게 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구원이 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이기고 지키고 얻게 하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얻고자 하면 잃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주님이 이 방법으로 지키고 얻으셨고, 승리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그랬고 저도 이 방법으로 고난을 받으므로 얻고 승리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설립지역에 있을 때에 우리교회 오십 메타 앞 입구에 같은 노회 시찰소속교회가 교회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는 우리 교회가 이전할 때 이전을 반대하고 남았던 이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지금 우리 교회 입구에 교회를 지으려고 합니다. 노회도 정의롭지 못해서 이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우리교회를 중심으로 100미터 안에 세 교회가 있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싸워서 지키기를 포기하고 아브라함의 본을 따라서 우하면 좌하고, 좌하면 우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좋은 부지로 이전하기로 칠년을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교회는 신도시의 중심부의 종교 부지를 당첨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니 주변교회들이 저를 달리 대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어주었지만 우리 하나님은 온전히 얻게 하시고, 더 좋은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고난이 닥쳤을 때 다윗처럼 내어주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지킬지, 내어줄지를 아는 믿음이 됩시다. 내어줄 때 내어주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내어 주어야 할 때 지키는 것은 재앙입니다. 이 믿음. 이 믿음의 지혜와 용기와 결단을 주시도록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갈멜산 기도회에서 이 믿음과 기도를 배우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내어주므로 온전히 지키고 승리하시는 은총과 더불어 주님을 본받는 은총을 환난 중에 누리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믿음은 빼앗으려고 오는 환난 속에서도 평안과 담대함을 누리게 해줄 것입니다. 내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고 비운 사람은 더 이상 잃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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