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7,3 주일강론
본문 : 마13:3-9
말씀 : 라인권목사
벌써 유월이 가고 칠월이 되었습니다. 장마와 폭염이 시작되는데 사람이 살필 것을 살피시고 유의해서 평안하고 강건들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4월부터 천국비유 중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강해하며 은혜를 함께 해왔습니다. 오늘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결론을 삼아 말씀이 나가서 결실할 경우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한다는 말씀을 공부 하려고 합니다.본래 제 계획은 이 열매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부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비유는 세세한 세부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가지는 하나의 교훈을 주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매가 무엇이냐 백배, 삼 십배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따라서 결실하여 백배가 되고 육십 배가 삼십 배가 된 다는 것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과 효과를 강조한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효력을 사55:10-11절을 봅시다. “하늘에서 비와 눈이 내리면 그냥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오게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고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은 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백배, 육십 배, 삼십 배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러 나가는 자들은 반대와 고난이 있을지라도 이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나가라는 긍정적인 천국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런 취지를 이미 살펴보았으므로 열매가 무엇이냐를 별도로 공부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이 열매가 무엇이냐를 별도로 공부하는 것은 몇 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열매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동기
우선 천국비유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주님이 친히 “씨는 말씀이다.”이런 식으로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주님의 해석의 범주 안에서 열매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은 것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더 깊고 풍성하게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말씀이 나가서 결실하는 것에 대한 의례적인 해석과 터무니없는 풍유적 해석의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결실하는 것, 열매가 무엇이냐고 질문할 때에 가장 일반적이고 의례적인 해석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통칭되는 내적인 성장과 전도의 열매라고 하는 외적인 열매로 보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결과론적으로 맞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본문에 대한 너무 안이한 자세이고 태도입니다. 본문 자체를 자세하게 공부하려는 것이 이 아니라 공식 대입하듯 쉽게 성경을 대하는 좀 얄팍한 자세입니다. 이런 안이함과 얄팍함이 본문의 의미를 놓치고 성경을 피상적으로 보고, 피상적인 신앙을 가지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이것 주의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본문의 열매를 아주 기발하게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조사해보니 정말 웃기고 어처구니없는 풍유적인 해석을 학자연하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씨는 말씀이라고 하셨는데도 씨를 “예수”라고 하는 이도 있고, 심지어는 30은 성경의 30 번째 성경인 아모스에 해당하고, 아모스라는 뜻은 무거운 짐을 진자이기 때문에, 삼십은 어려운 사역을 맡은 사람이 받을 보상, 육십은 삼십의 두 배 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사역을 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이고, 백은 육십에서 40이 적은 수이기 때문에 40은 광야와 금식에서 보듯 고난을 의미하고 고난을 받는 사람이 받을 보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해석을 학자연하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기를 지성적인 신앙으로 착각아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완전히 자기 주관, 소위 “내가 복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단적인 태도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가지고 노는 불경입니다. 성경을 영적 호기심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창녀와 같은 짓입니다. 이런 불경에 빠지지 않게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가 말씀이 나가서 결실하는 열매가 무엇이냐를 공부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강조하신 말씀하신 말씀이 나가서 결실한다는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이 강조하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결론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나가서 결실한 다는 것부터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결실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이미 말씀을 드린 것 같이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리는 목적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가는 목적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가는 목적대로 이루어지는 것
그러면 말씀이 나가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 비유와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본문에서 말씀이 나가는 목적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말씀이 나갈 때에 말씀이 막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막4:19을 봅시다.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이 막혀”라고 했습니다. 무엇에 막힙니까? 말씀에 대한 길과 같은 마음과 태도, 돌밭과 같은 마음, 가시떨기와 같은 염려와 걱정과 이생의 자랑과 향락에 말씀이 막혀 질식합니다. 이렇게 말씀이 막히면 말씀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고 믿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비극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이 가르치셔도 그들의 주관주의, 자기중심주의, 자기사랑, 세상사랑에 말씀을 막혀서 말씀을 받을 수가 없고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결과 말씀이 나가는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가는 목적은 소극적으로 말씀이 막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실입니다. 내게 말씀이 막히고 말씀이 질식하지 않고, 말씀이 내속에서 살아서 역사하고 달리는 것이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속에서 역사하고 달려서 말씀이 나가는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천국의 양태가 나타나고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나가는 적극적인 목적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11,12을 봅시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이 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그래서 주님은 있는 자는 더 넉넉하게 해주시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입니다. 참으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분리하시고, 참된 믿음의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시려고 이 비유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나가는 목적은 유대인들과 같이 천국의 비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함이 아니라 깨달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죄와 구속과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천국의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나가는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결실하는 것, 열매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만 나타내시는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1:25-27을 보세요.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되는 복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는 것, 그래서 천국의 비밀을 깨달아 아는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복에 들어가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더욱 풍성해지게 더욱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서 말씀이 나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천국을 깨달은 사람의 속에서 일하는 말씀의 능력과 효과가 삶에 나타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해 나가는 것이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능력과 효과가 믿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나타난다고 하는지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본문을 정리해 봅시다.
첫째, 돌이켜 죄사함을 받것이 열매입니다. 막4:12을 봅시다.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비유로 말씀하신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목적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의 적극적인 목적은 돌이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돌이켜 죄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 말씀의 능력과 효과입니다. 이것을 말씀이 결실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나가는 것은 회개하여 천국을 받아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회개와 사죄의 열매가 있고 나타나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 천국백성입니다.
둘째로,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열매입니다. 눅8:12을 봅시다. 길가는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빼앗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가는 적극적인 목적은 “믿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씨 뿌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입니다. 회개하고 믿어 사죄, 칭의 새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이 열매입니다.
셋째, 잠간이나 조금 믿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어서 꾸준히 많이 크게 믿는 것이 열매입니다. 눅8:13을 봅시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잠간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환난과 박해가 오면 버리고 포기하는 잠간 믿는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라 환난과 박해에도 끝까지 꾸준히 많고 크게 영구적으로 믿는 것이 말씀의 능력이요 효과요, 열매라는 것입니다.
넷째, 천국적인 삶 참 삶을 사는 것이 열매입니다. 눅8:14을 봅시다.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즉 세상에 있는 것에 지배를 당하지 않고 말씀에 지배되어 자신과 세상 것에 대하여 자유롭고 평안하고 풍성하게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렇게 세상에 지배 되면 천국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에 지배되어 세상근심 걱정, 재리의 유혹과 향락에 매이고 막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배해 나갑니다. 그 결과 자기에서, 물질에서, 세상에 대하여 자유하고, 평안하고 풍성하게 살아갑니다. 이게 말씀의 능력이요, 효과요, 열매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요, 생명이요 영생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지킨 말씀은 나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순종한 말씀은 순종으로 이루어진 삶과 함께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원한 것입니다.(벧전1:22-25)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지키고, 순종한 말씀이 내 소유라라고 하셨습니다.(시119:56) 이게 천국의 상급입니다. 이게 말씀의 목적, 열매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이냐? 구원본질, 구원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란 어떤 것입니까? 구원이란 소극적으로 표시해서 죄와 그 결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개념을 잘 설명하는 것이 눅1:68-74,77절입니다. 속량. 건지심,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구속입니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루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 구원을 회개와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받는 것이 말씀이 나가는 목적, 열매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닌 영적 실제입니다.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영적인 실제가 있는 것이 열매입니다. 사죄 , 칭의, 새 생명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이 평화, 기쁨, 감격, 소망 자유, 능력이 나타는 것이 말씀의 목적,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 열매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 말씀의 열매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복에 다 참여 합시다.
따라서 구원이란 적극적으로 표시하여 고귀한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백성으로서, 참 사람으로서, 자유롭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눅1:75을 봅시다. “종신토록 주 앞에서 성경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이렇게 종신토록 섬기는 삶이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내 앞에 놓인 인생과 삶이 구원 거리입니다. 이게 구원 받은 사람의 특권이고, 행복입니다. 이 참 사람으로 사는 기준이 율법의 대강령 사랑입니다.(마22:37-4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거짓된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염려하고 위하는 참 자기, 참된 삶을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아담에게서 보듯,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거짓된 자기의 삶에서 구속하여 본래대로 자기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는 참 사람, 참 자기가 되게 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참된 삶 참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한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참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는 거짓된 자기로 기울 때에 이 거짓된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과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사는 자기로 자기를 구원해 간다고 하신 것입니다.(고전9:27)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렇게 자기 구원과 타인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열매입니다. 이게 말씀이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고전10:31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참 사람, 참자기로 말씀에 지배되어 사는 것이 내 삶을 자유하게 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요, 풍성한 삶이요,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이루는 삶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을 입혀 이 사람 되고 이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역사하여 말씀을 따라서 사는 참 사람으로 사는 구원으로 참된 행복을 구하며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천국의 복에 참예케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천국 사람 되게 하시고 이 천국 사람으로 자유롭고 정상적으로 살아서 금생과 내생을 천국을 이루게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나가는 목적, 결실하는 열매는 이 구원을 받아서 이 구원으로 살아가며 이 구원을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구원과 천국을 이루고 나타내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 이 구원으로 살아 진정 자신과 세상과 세상 것에서 자유하고,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누리는 것이 말씀의 열매인줄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으로 사는 사람은 다가오는 나라에서 주님의 영광과 즐거움에 동참하는 복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힘써서 이 말씀이 결실하도록 구원의 열매를 맺어가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이 천국의 아들들을 세워가고 이 천국을 나태내고 세워가는 교회로 주님 앞에 서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소극적으로 죄와 그 결과에서 구원하신 이 구원을 받게 하셔서 천국의 말씀이 내게 결실하게 하신 것을 찬양합시다.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는 거짓된 나를 구속하여 하나님과 이웃의 행복을 염려하는 참사람이 되게 하시고, 참된 행복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셔서 천국의 말씀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결실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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