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선목사 하관예배(2018,10,18)
본문 : 고전15:50-58
말씀 : 라인권목사
지금 우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서있습니다. 최 목사님께서 영광에 들어가셨을지라도, 지금까지 우리는 그 영혼의 장막 된 육신을 모시고 있었지만, 이제우리는 그 육신마저 흙으로 돌려보내야만 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목사님의 존엄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최목사님의 육신을 흙에 두고 우리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는 어떤 약으로 치료할 수 없고, 이 애통은 인간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례 중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하관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보면 이렇게 최 목사님을 흙으로 보내드리는 이 순간이야말로 소망이 넘치며,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흙으로 보내는 이 시간이야 말로 이 땅에서 부활의 능력과 영광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한 사람의 몸을 흙으로 보내는 장사가 우리의 이 썩을 육신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육체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나오기 위하여 심는 것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최 목사님의 육신을 흙으로 보내는 것은 썩을 몸을 심어서 썩지 않을 몸을 거두기 위함이며, 욕된 몸을 심어서 영광의 몸으로 살게 하며, 약한 육신을 심어서 피곤하지도, 지치치도 않고, 병들고 죽지도 않는 강한 육신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소망으로 심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흙에 심는 최 목사의 육신이 재림의 나팔이 울리는 날에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사시고, 욕된 몸이 영광으로 몸을 입고 나오시고, 병들었던 약한 육신이 강한 몸으로 나오셔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사망권세를 발아래 밟고, 사망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시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우리는 이 영광의 소망으로 최 목사님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영광의 소망으로 이제 비통한 눈물을 가슴에 거두시고 목사님을 보내드립시다. 그리고 슬픈 눈물을 거두시고 이 영광의 소망으로 이 산을 내려갑시다.
우리는 이 영광의 소망으로 최목사님을 감사함으로 보내드릴 수 있고, 감사함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의 순교에 열 가지를 감사하셨다지만, 돌아보면 최 목사님은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목회를 생각해도 감사요, 자녀를 생각해도, 감사요, 교회를 생각해도 감사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목사님께 잘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광으로 소망으로 최 목사님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보내드리고, 감사함으로 이 산을 내려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영광의 소망으로 최목사님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안고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상실의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겁니다. 그 아픔의 시간에 목사님과 행복했던 추억이 위로가 되시고 , 목사님 안 계신 세상을 사는 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최목사님의 이 영광의 소망을 보며 결단을 가지고 내려갈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 부끄러운 자녀가 되지 않기를 결단합시다. 목사님의 사역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결단합시다. 목사님이 인생을 바친 교회를 더욱 사랑하기를 결단합시다. 목사님과 같이 믿음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를 결단하고 내려갑시다. 홀로 되신 사모님을 외롭게 하지 않기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최목사님이 그리워서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승리의 소식을 가지고 오실 수 있고. 목사님과 같이 승리의 면류관을 쓰시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은 앎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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