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행/길에서 줍는 진주

애양원에 떨어진 동백꽃은 붉었다!

아브라함-la 2013. 4. 29. 13:30

 

   동백꽃 지던 여수 애양원으로 손양원목사님을 찾아 가는 길은 참 멀고도 멀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을 읽은 게 막 이십대에 들어설 때였고,“사랑의 원자탄”을 영화로 본 것도 이십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이십 중반에 헌신했고, 목사 된지 삼십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손양원목사님이 사역하셨고 순교한 애양원을 찾았으니 멀고 먼 길을 돌아온 셈이 아니겠습니까?

 

 

         - 일제강점기 한센환자들의 희망이자 요람이었던 한국최초의 한센전문요양병원 -

                  

 

그것도 금년 순교지 순례를 애양원으로 정하는 것을 여러 번 망설이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작년 여수박람회로 아무리 길이 좋아졌다고 해도 편도 4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를 교인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따랐기 때문입니다. 일찍 출발하여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것은 목회 적으로도 지혜로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사표인 순교자 손양원목사님을 이제 사 찾게 되니 만시지탄과 더불어 왠지송구한 마음이었습니다.

 

 

                                                문화재가 돤 애양원교회당

                천형의 질병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고

                        여기서 그들은 주구를 만나고 육신의 보금자리를 얻었다

 

애양원은 여수공항 앞에서 공항 담장을 따라서 공항을 빙 돌아서 나지막한 동산위에 고풍스럽게 여자만을 향하고 거기 외롭게 있었습니다. 지금 개발될 대로 개발되어 입구에 공항이 있고 건너편에는 여수산업공단이 있는 지금도 이곳이 육지인지 섬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데 일제 때는 얼마나 고적했겠습니까? 공항 길을 휘돌아 애양원으로 들어가며 그 시절 천형의 질병으로 세상의 버림을 받아 귀양지 같은 이곳을 찾아들어 둥지를 틀었을 목자 없는 양 같은 한센병 환자들을 처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애양원은 목포에서 사역하던 오웬 선교사를 치료하려고 광주에서 길을 떠난 포사이트 선교사가 노중에 만난 한 여성 한센병자를 치료한데서 시작된 한국최초의 한센 병 전문요양병원입니다. 본래 광주에 광주 나병원으로 있다가 여수로 들어가는 들목인 율촌면 신풍리로 이전 하여 한국의 한센병자들의 희망이자 요람이 된 곳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여기를 사역지로 삼았다는 것이야 말로“예정”일 것입니다. 손목사님처럼 이곳에 적격일 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착한 애양원은 공사 중이라 조금 어수선했습니다. 먼저 애양원교회 현관 앞에 있는“손양원목사 순교기념비”를 돌아보고 석조로 지어진 지금은 문화재가 된 교회 안에서 간단하게 애양원과 손양원목사 신앙과 삼부자의 순교와 용서의 사랑을 설명한 후에 애양원 역사박물관으로 해서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을 돌아보고 삼부자 묘지에서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는 순으로 순례를 마감했습니다.

 

 

 

 

순교기념관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는 예수에 중독되어야 하겠다”라는 손목사님의 지론과 동신, 동인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한 저 유명한 감사를 기록한 빛바랜 헌금 봉투와 삼부자 묘지였습니다. 이것이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목사로서의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서라도 일천 명이나 되는 양떼를 두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피난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손목사님과 같이 한센환자들의 환부를 입으로 빨아줄 자신도 없고, 또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을 만한 도량도 없지만 감사하는 것은 나 같은 목사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애양원에서 만난 손양원목사님과 손목사님의 길은 나로서는 왠지 여기서 애양원이 먼 것 같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주기철 목사님과 더불어 한국교회 순교의 양대 산맥과 같은 가장 유명한 순교자이자 사랑의 성자로 불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일 겁니다. 손목사님이야 목사이기 때문에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셨겠지만, 일천 명의 애양원 양떼를 버릴 수 없다며 장로들이 피난하도록 마련한 배에서 내려 죽음의 자리로 돌아 왔을 때, 그리고 두 아들을 앞세운 사모님이 남편까지 순교의 제물이 되었을 때의 사모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삼부자 묘 앞에 서니 그저 가슴이 저며 왔습니다.

 

 

 

 

 

 

일제의 사신 우상 앞에 결코 굴하지 않은 수진성도이자 양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어진 사랑의 목자. 주님사랑과 진리를 지키려 박해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다 앞 선 두 아들과 같이 미평 과수원에서 마침내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드리시고 그리 사랑하시던 주님 품에 안기신 손양원목사님, 그리고 그와 함께 천형의 질병을 지고 주님을 섬겼던 애양원 한센성도들의 삶과 신앙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 무엇을 말해 주고 싶어 할지, 여자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미한 소리로 말해 주는 듯 했습니다.

 

 

                   삼부자가 주님오실 때까지지 그 육신이 안식하고 있는 양지쪽 삼부자묘지

               아래가 동인 동신 아두 아들의 묘이고 위가 아버지 손양원목사의

               묘로 사모님과 합장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성도들이 이번 애양원 순례에서 받은 은혜와 도전을 나누는 소리를 들으면서, 손양원목사 순교기념비 곁에 떨어진 동백꽃이 생각났습니다. 동백은 한번은 나무 가지에서 피고 한번은 땅위에서 핀다고 합니다. 동백꽃은 마치 목이 뎅겅 떨어지는 것 같이 꽃송이 채 뚝뚝 땅위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동백은 꽃이 시들기 전에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다시 한 번 땅위에서 피어난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호사가들은 눈동자와 사진에서 다시 핀다고도 하지만 저는 마음에서 핀다고 하고 싶습니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비 곁과 기념관의 동백꽃

                                 동백은 가장 순교자를 닮은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동백의 꽃말은 <자랑, 겸손한 아름다움, 고결한 사랑,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 합니다>등입니다. 동백꽃은 그 어느 꽃보다도 순교자와 어울리고 순교자를 닮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입니다. 동백이 떨어져서 땅위에서 다시 피는 것 같이 순교자는 죽어서 말하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그 신앙과 삶이 다시피어 나기 때문입니다. 차안에서 성도들의 가슴에서 손양원목사의 신앙이 동백처럼 다시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애양원에 떨어진 동백이 유난히 붉었던 건 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애양원에 피어난 손목사님의 양 무리에 대한 지고지순한 동백보다 붉은 사랑, 그리고 동백보다 붉은 순교신앙의 꽃은 동백보다 붉게 우리 마음에서 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눈감으면 여자만을 굽어보는 삼부자 묘가 떨어진 세 송이 동백꽃 빛으로 눈에 선합니다. 애양원에 떨어진 그날의 동백꽃은 참 붉고 붉었습니다.

 

   

               삼부자 묘지의 외로운 민들레 한포기,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사명의 영토를

            민들레 처럼 지키고 민들레 씨앗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고 있다

                        우리의  민들레 영토는 어떻게 지켜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