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송년주일 강론
본문 : 왕하 25:27-30
말씀 : 라인권목사
어느덧 송년주일이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노고를 주께서 위로하시고 복 주시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신경정신과의사인 유태인 빅터 프랭클의(Viktor Emil Frankl)<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일화로 말씀의 문을 엽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절망의 날을 보내던 어느 날 수용소 벽에 누군가 써놓은 놓은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Hope is Nowhere!” 이 낙서를 유심히 보던 빅터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Hope is Nowhere!”에서 nowhere를 띄워 쓰면 “Hope is Now here!” 가 된다는 겁니다.
빅터는 이 낙서를 여호와의 계시로 여기고 그때부터 제공되는 물을 아껴 먹으며 남은 물로 세수를 하고, 깨진 병 조각으로 면도를 하며 위생관리를 하여 건강을 유지하므로 마침내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고, 그 속에서 관찰한 유대인 수용자들의 모습을 연구하여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을 보는 긍정적인 생각이 인생을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제가 오늘 이 빅터의 이야기로 말씀의 문을 여는 것은 연말은 자신에 대하여 좌절하고 절망하기 쉬운 때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성과가 좋으면 문제가 없지만 금년이 작년 같고, 어제가 오늘 같아서 영육 간에 발전과 성장이 없는 이들은 마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예 공부를 포기 하듯 자기에 대해서 별다른 소망을 갖지 못하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띄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이런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찬란하게 입증하는 복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이 본문을 간단히 해설하면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된지 37년 만에 에월므로닥이 즉위하면서 바벨론에 잡혀온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석방하여 체면을 세워주고, 그에게 예우를 갖추어 말하고, 그 지위를 바벨론에 포로로혀 온 왕들 중에서 제일 우대하고, 그 평생에 왕과 함께 왕의 식탁에서먹게 하고 별도의 경비를 주어서 종신토록 나름 왕실을 유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열왕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왕국을 세워 주셨지만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아서 백성들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회개 시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셨지만 안 들어 먹어서 결국 망하고 망하다 아주 망해서 바벨론에 넘겨 성전까지 망하게 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를 목이 곧고 완악하고 완고한 패역한 백성이라고 하셨지요. 싹수없는 족속,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열왕기를 마칠 때에 하나님은 포기와 절망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유다가 회복된다는 소망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치게 하시고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은 비록 완악하고 완고하여 포로 된 백성이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시고 구속한 자기 백성에게 소망을 두시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택하셨습니까? 후사를 볼 수 없는 아브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우상섬기는 백성들이었지요? 택함은 은혜입니다. 이렇게 선민이 되게 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조상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의 기관”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고, 신명기는 이를 “제사장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주가 오시게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열방에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이 사명에 충성하고 성공했습니다. 한 마디로 실패요, 낙제입니다. 자격미달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왕들이 보인 행토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이지요? 그래서 포로된 겁니다. 만방에 흩어버린 겁니다. 우리 같으면 이 백성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싹수있고 소망 있는 다른 민족을 찾으면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을 보세요! 여호야긴을 포로 중에 바벨론에서 나름대로 왕실을 유지하게 해 주십니다. 이거 무슨 이야기입니까? “너희들이 구제불능이지만 그래도 나는 본래 내 뜻대로 너희를 통해서 내 뜻을 다 이루겠다. 그래도 너희가 나의 꿈이며 소망이다!”고 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다른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치 이스라엘이 아니면 다른 백성이 없는 것과 같이 그 이스라엘을 붙잡고 일하시고,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심지어 타락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포로 되었어도 하나님의 소망이요, 징계 중에서도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포로 된 백성이라도 택한 백성에게 소망을 두십니까?
왜 하나님은 타락해서 포로 된 백성에게 소망을 두시나?
첫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해서입니다. 사람은 어긋나면 바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불변자입니다. 바꾸면 하나님이 바꾸는 것이지요? 이게 하나님이 거짓말 못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시면 바꾸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하여 자신을 걸고 일괄되게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 때문입니다. 삼하7:12-17절에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네 씨를 세워 나라를 견고하게 하고, 죄를 범하면 징계하지만 사울에게서 은총을 빼앗은 것과 같이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실함으로 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 소망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 때문입니다.(사9:7)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심을 내십니까? 왜 앗수르가 오고 바벨론이 오고 포로 됩니까? 이게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 하면 막 애가타지요?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이 아들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이 언약을 이루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한 소망은 당신의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대안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 유일한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부족해도 하나님의 소망이요 심지어 범죄하고 타락해도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징계와 저주 중에도 하나님의 소망의 빛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오직 우리만 보십니다. 우리만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이고 부족하고 냄새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적극적인 것입니다. 실패 중에도 믿음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지금까지 실패했어도 새해를 소망으로 맞는 겁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
따라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한 소망이듯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빛이 밝아 옵니까? 그들이 회개했을까요? 물론 회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 에스라와 느혜미야와 그를 따르던 백성들은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때 37년경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단맛에 빠질 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고레스의 귀환령에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호야긴의 체면을 세워주고 왕 대접 받게 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가 있고 우리에게는 장래와 비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자신을 인하여 소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하여 소망을 가지는 겁니다. 믿음은 자신이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나, 자기 밖에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이며 하나님이 우리 소망이라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두시고, 하나님이 우리 소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아니면 안 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파트너쉽을 가져야합니다. 내가 부족해도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밭이요, 집이요, 일꾼입니다.(고전3:9,4:1)이 자부심을 가져야합니다. 여기서 충성과 회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이 유일한 소망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회개하고 고쳐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시간 지금까지의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과오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합시다. 그래서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의 기쁨의 파트너가 되시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시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가 아니면 안 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소망을 둘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 된 백성에게 소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정도로 우리를 믿고 소망하시는데, 우리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소망을 갖지 못하면 불신앙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자기를 긍정하고, 소망을 가지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신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전심으로 행하는 적극적인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두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신 다는 것은 우리를 적극적이 되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열심을 내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전심전력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효율적인 파트너가 되어서 우리 하나님이 일하시기 좋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히11:40을 봅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 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루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이므로 새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들이실 줄로 믿습니다. 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Hope is nowhere가 언제나 “Hope is Now here!”임을 찬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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