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시온의 딸아 기뻐할지어다!”

아브라함-la 2019. 4. 7. 17:03

2019,4,7, 주일강론  

본문 : 슥9:9-10 

말씀 : 라인권목사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이 종려주일이고 고난 주간입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은 주님의 고난을 기리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기간에 세례지원자들 세례 받을 준비를 하게 했고, 교중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토요일과 주일 외에는 금식하게 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이런 전통이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금욕과 수행으로 전락되게 했습니다. 여기서사육제라는 웃지 못 할 제전이 생기기도 하고, 남미나 필리핀에서는 지금도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 고난주간하면 금욕과 수행, 참회의 슬픔이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고난주간의 성경의 이미지는 이런 이미지와 달리 환희와 기쁨을 이미지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경이 고난의 주님을 어떻게 맞으라고 하는지 신구약을 다 훑어보아도 금식하라고 한 곳은 주님이 신랑을 빼앗길 때에 금식하라는 말씀 딱 하나 뿐입니다. 오히려 주님은 고난 당하는 주님을 위하여 우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 스가랴도 그렇습니다. 스가랴는 포로 되어가서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고레스의 귀환 령을 따라서 스룹 바벨등과 함께 제1차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이자 선지자입니다. 이 스가랴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입성을 미리 보고 예언 한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스가랴의 예언대로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오십니다. 십자가로의 행진입니다. 이 십자가가 예수님의 승리요 영광입니다. 그래서 승리의 입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을 어떻게 맞아야 하겠습니까? 죽으러 오시니 눈물로 맞아야 할 것입니다. 슬픔과 애통이 그 분위기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슬픔과 애통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슬픔과 애통이 아니라 기뻐하라고 합니다. 9절을 보세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고 합니다. 큰 기쁨과 환호와 환희의 찬송과 부름으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금욕과 슬픔이 아니라, 이 기쁨과 환희가 십자가로 행진해 가시는 예수님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왜 이 기쁨이 이 십자가로 가는 승리의 입성에 어울릴까요?

 


첫째 왕의 오심을 기뻐하는 기쁨 여부가 시온의 딸들, 즉 참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왕이 오시는데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왕이 왕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싫어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의 딸, 즉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면 그 왕을 보는 것이 소원이고 지상의 기쁨일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에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입성하실 때, 온 예루살렘이 환영하는 것에 당국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시기심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환호로 맞는 것을 반대하여 주님께 조용히 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19:39,40) “보라 온 세상이 저를 따르는도다”(12:19) 이렇게 낙담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주님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것, 왕이 되시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무리들은 크게 기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왕으로 오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예수께 대한 기쁨은 내가 어느 나라 백성이냐? 내가 누구 백성이냐의 시금석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좋고 기쁨이면 예수께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왕 되심을 기뻐한다면 그는 천국에 속했습니다. 따라서 시온의 딸, 하나님 나라의 백성,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과 주님의 왕 되심을 기뻐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왕이신 주님이 기쁨의 이유이고 권리입니다. 시온의 딸 된 우리는 기뻐할 이유와 권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내 왕이라는 것이 기뻐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는 것이 기뻐할 권리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시온의 딸들은 이 권리를 사용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침잠된 영을 이 권리를 사용하여 기뻐하시므로 불사조와 같이 살아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왕이신 예수님을 맞는 것이요, 이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 이 기쁨으로 살아나오는 것이 진정 고난의 주님과 왕이신 예수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이 기쁨으로 내가 주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운 나라의 백성인 것을 고백하고 나타내 보이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시온의 딸들은 왕의 구원의 소망으로 기쁨을 출산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기쁨을 잉태하게 합니다. 기쁨은 소망이 낳는 자식이요, 소망이 생산하는 축복의 열매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이 왕으로 오실 것과, 왕으로 오심으로 이루어질 구원과 그 결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점을 강조합니다. 스가랴가 이 예언을 할 때는 돌아온 히브리인들이 착공한 성전공사가 15년이나 중단되고 있고, 여기에다 세속주의가 만연하고, 흉년에 기근까지 겹쳐서 지도자도 백성도 낙심해서 침잠해 있는 때입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스가랴는 크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왕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왕이 오시면 공의와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구원(노솨)라는 말은 구원되다. 보호되다, 해방되다, 라는 의미입니다. 10,14-17절이 이를 구체적으로 찬란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칼이 아닌 화평의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합니다. 전쟁이 그치고 화평의 통치가 온 누리에 이루어집니다.(10) 야웨 쯔바오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전사가 되어 주십니다.(13-15)양떼같이 구원하시고, 왕관의 보석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16-17)즉 왕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 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Savior, 구세주,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왕으로 오시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이 왕이신 주님과 왕이 베푸는 구원에 대한 소망입니다. 믿음은 이 주님과 이 나라를 바라는 소망을 본질로 합니다. 이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하고 소망은 기쁨이라는 생명의 능력을 출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온의 딸들은 이 소망의 능력으로 기쁨을 출산하고, 생산해내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이 소망을 이루어주시고, 이 기쁨의 나라를 주시려고 십자가로 행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베푸실 왕이 우편보좌에 계십니다. 이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왕의 구원으로 다 구원이 됩니다. 다 생명이 될 것입니다. 다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이 소망과 기쁨을 주시려고 승리의 입성, 십자가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고난주간의 이미지는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온의 딸은 이 소망의 능력으로 막 기쁨을 출산하는 사람입니다. 시온의 딸, 우리는 이 구원의 소망의 능력으로 좌절에서도 기쁨을 생산합시다. 무기력에서 기쁨을 출산해 냅시다. 침잠한 영에서 이 능력으로 기쁨을 산출하여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살아나오는 사람입니다. 이게 예수님 왕이 되신 사람의 능력입니다. 이 구원의 소망의 능력으로 누에가 실을 뽑는 것 같이, 사출기가 사출해내는 것 같이 기쁨을 출산합니다. 기쁨을 알지 못하는 세상이 이 기쁨을 전합시다. 이 사람과 이 삶이 고난의 주님과 어울릴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고난 받으신 주님이 기쁨일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받은 시온의 딸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를 왕으로 세우셨고 보내셨다는 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셨습니다.(1:6)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3:16)“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5:10) 예수를 왕으로 주셨다는 것,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증거이며, 예수의 구원이 현재하는 것은 지금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스바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좋아 죽는 백성이 누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간 백성입니다. 자기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따라간 못난 백성입니다. 범죄 한 백성, 타락한 백성, 실패한 백성, 포로 될 백성입니다. 이 형편없는 백성을 사랑해서 친히 왕이 되어 구원해서 주시고 그렇게 좋아 죽어 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인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실패한 나를 사랑하십니다. 어쩔 수 없는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 사랑해서 아들을 왕으로 주시고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로 즐거이 부르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는 이 현재적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 사랑 받는 감격을 사도 요한은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3:1)선지자는시온의 딸아 노래할 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3:14)

 

 이게 시온의 딸들의 특성입니다.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꽃피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 현재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환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정말 꽃처럼 피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여자가 자신이 사모하는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활짝 핍니다. 하물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겠습니까? 이 사랑의 감격과 행복이 넘치는 사람이 시온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딸된  우리는 제 아무리 어렵고, 좌절이 몰려올 그때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음을 믿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에서도 사랑의 감격으로 크게 기뻐하는 것이야말로십자가로 행진하시는 예수님께 어울리고 예수님의 기쁨일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기쁨은 왕의 백성의 시금석입니다. 우리 왕 예수는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십니다. 이 왕의 구원의 소망이 기쁨의 모태입니다, 왕이신 예수가 계신 것은 하나님의 현재적 사랑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감격과 기쁨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십자가로 나가게 하신 것,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새끼나귀를 타시고 십자가로 행진해 나가시는 승리의 입성을 하신 것은 이 구원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지금 고난당하시지도 않고, 영광 중에 계십니다. 지금 주님은 우편보좌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이루신 구원을 누리기를 기뻐하십니다.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에 금식도 이 감격과 이 기쁨으로 하는 것이지 금욕이나 수행이 아닙니다.

 

은혜로가족 여러분!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라고 하셨습니다.(8:10) 이 소망과 기쁨이 없는 사람이 에스골 골짜기의 메른 해골 떼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슬픔이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살리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여러분! 금욕과 슬픔이 십자가의 살리는 능력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운 찬송이 십자가의 살리는 능력인줄 믿습니다. 우리를 좌절케 하는 모든 것에서 살리는 것도 이 구속 받은 기쁨입니다. 이 기쁨으로 자신을 살리고 기쁨을 모르는 세상을 살립시다.


이것이 십자가로 가시는 주님의 소원이십니다. 이 소원 때문에 십자가로 가십니다. 우리가 자녀가 대학 들어가도 자랑합니다. 손자 보아도 자랑하는데 왕이 오셨습니다. 그 왕 예수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구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고난의 주님께 어울리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 기쁨을 누리고, 기쁨을 전합시다. 그래서 기쁨을 모르는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기쁨의 사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이 거룩한 기쁨이 사순절과 고난주간의 이미지가 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로써 십자가와 신앙의 전승이 후세에게 부담이 아닌 매력이 되게 하는 거룩한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기쁨이 우리 은혜로 가족의 이미지입니다. 은혜로 가족은 이 구원의 기쁨으로 십자가로 행진하는 주님과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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