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강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아브라함-la 2019. 5. 5. 17:57

019,5,5주일강론  

본문 : 고전15:12-19 

말씀 : 라인권목사

    성경과 빈 무덤, 그리고 베드로를 필두로 하여 사도 바울에 이르는 증인들이, 그리고 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고린도 교인들과 지금 현재 구원 받은 우리가 최종적인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렇게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데도 고린도 교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도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는 부활이 없다고 가정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논리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논증한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고 가정하면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사실이

부활이 없다면 이미 복음이 전파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12) 전파 되었거늘이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주가 되신 것이 전파되고, 이를 믿어 구원이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복음이 전파 된 것이 부활을 공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이 없다면 당시 유대에서 근무했던 로마 총독을 위시해서 모든 로마의 관리들은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면 사도들은 단순하게 예수의 부활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왕이시다. 왕이신 예수님의 나라가 온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이것은 혹세무민이요, 로마에 대한 반역입니다. 로마는 이것을 엄단했습니다. 방대한 식민지를 가진 로마가 제국의 질서를 지키려면 민심을 소요케 하는 혹세무민과 반역을 엄단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부활이 사실이 아닌데도 복음 전파를 금하지 않고, 허용했다면 유대의 로마관리들은 직무유기를 한 것이고,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전파를 막지도 못하고, 직무유기로 처벌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왜요?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복음 전파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 된 것이 부활의 공인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복음이 전파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봐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유대와 로마의 관리들이 왜 막지 못했느냐?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냐? 따라서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었는데도 부활이 없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사실이 사실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이 전파된 것이 부활의 공인이다. 말하자면 지구가 돌고 있지 않다고 해도 지구는 돌고 있는 것 같이 사실은 사실 아닌 것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이 아니면 복음의 전파는 설명이 안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 부활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를 없이하려는 모든 시도가 다 자기 발만 깨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부활의 증거를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의 전파로 부활이 공인 된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

둘째,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있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 수 없다는 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부인 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 사람이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예외적으로 부활 할 수가 없습니다.(13)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데,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 할 수 있는지 설명하라는 거지요.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께서 다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실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죽음으로 끝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사람 되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다시 살게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공연한 일을 하시는 것이 됩니다. 불멸의 존재인 인생이 타락하여 영멸해서 생명의 부활로 살게 하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죽은 자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사셔서 시퍼렇게 살아계십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이 예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이걸 설명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어서, 우리 예수님도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있어서,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우리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된 줄로 믿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게 기독신앙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객관적 사실에 서서 그 사실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실제와 논리가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경험이

셋째,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라는 경험을 설명할 수가 없게 됩니다.(14) 전파 되는 복음이  믿음의 내용이지요. 이 기독교 신앙이 무엇입니까? 저는 이것을 단 한 단어로 정리한 다면 구원이라고 확신합니다. 복음이란 예수께서 사죄, 칭의 새 생명, 자녀 됨, 거룩해짐, 영화롭게 하는 구원이 되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이다로 끝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신앙고백이 단순한 교리나 신조입니까? 이게 단순한 교리나 신조가 아니라, 믿는 자의 실제적인 경험입니다. 즉 복음을 믿을 때에 실제로 사죄, 칭의 새 생명, 자녀 됨과 거룩해지는 구원이 일어나고 경험됩니다.(17) 믿을 때에 거듭나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죄와 자신을 이기고 거룩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심지어는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구원이라는 신앙의 경험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는 것은 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생한 신앙의 경험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 부활이 안 믿어집니까? 지금까지 복음을 믿은 사람들, 아니 믿은 정도가 아니라 복음이 생활이 되고 심지어 순교한 사람들은 나보다 무식하고, 무지하고, 어리석고, 약해서 복음을 믿었을까요? 그들이 믿은 것은 무지하고 무식해서가 아니라, 복음이 실제로 자기에게 구원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구원 받은 이 신앙의 경험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께 살아계시고, 부활이 사실인 것을 믿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이론이 아닌사실이라는 살아있는 기념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이 믿음의 선진들을 보고 공부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헛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사실로 경험되어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보고 믿으십시오, 교부들을 보고 믿으시고, 이 라목사를 보시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이라는 믿음의 경험, 구원이 부활의 살아있는 기념비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들과 전도자의 진실성이

넷째,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사도들과 그들을 계승한 전도자들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사도들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다고 전했습니다. 기독교, 즉 교회는 사도들의 이 증거라는 토대에 서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이 사도들은 거짓증인이 되고, 교회의 터는 무너지게 됩니다. 사도들은 존경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사기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만 아니라, 지금까지 사도들을 게승하여 복음을 전한 모든 사역자들과 저 라목사도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지금 사기치고 있습니까?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저는 사기꾼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현대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도들을 교회의 터요, 성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들을 성인이 아니라 거짓증인, 사기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면 사도들과 전도자들을 사기꾼이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기독교의 특징입니다. 기독교는 사실이 아니면 설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 사실을 전하는 사람의 전파, 증거에 서는 것입니다. 이전파, 증거를 천사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말로 해야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과 그 사람의 진실성을 믿지 못하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은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부활한 주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당신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을 완악한 것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16:14) 여러분! 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특히 동료, 친구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이 사기꾼이라는 말입니까? 지금 이 말씀을 전하는 제가 사기꾼이라는 말입니까? 이걸 설명해야 합니다. 믿음은 사도들의 증거를 토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믿던지 부인하든지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철학과 삶이 옳은 것이 됨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의 철학과 삶이 옳은 것이 되고, 우리 기독교와 그 삶의 방식과 삶은 어리석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은 특히 순교한 그리스도인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순교하고 순교적으로 사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순교는 순교가 아니라, 망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천국을 표준으로, 천국의 상급을 바라며 이 세상을 경건하게 사는 것은 정말 불쌍한 것이 되고 말지요.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과 같이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이런 철학이 옳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사람은 설명할 수가 없게 됩니다. 도리어 이 세상 철학과 방식이 옳은 것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제하면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은 설명이 안 됩니다.

 

따라서  먹고 마시자며 본능만 따라서 사는 이 타락한 세상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도 다시 살 자임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 부활의 능력과 소망 사는 삶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을 보면 세상이 전부인 것 같습니까? 천국이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치 이 세상뿐인 것 같이 이 세상에서 다 누리려고 하면 누가 천국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주님이 부자에게 그러셨지요. '애 너는 살았을 때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지 않느냐?' 저는 이발하면서 사우나에 몰려온 일단의 사람들을 보며 이발사가 '요즘 목사님들 좋아요!' 하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이래서야 어찌 부활이 있고 천국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를 보면 심판이 있는 것 같아야 합니다. 우리를 보면 천국의 상급이 있는 것 같이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 다고 하면서 꼭 죽을 사람처럼 산다면 부활이 증거 되겠습니까? 꼭 죽을 사람이 아니라, 꼭 살 사람과 살아야 부활이 체험되고 증거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부활이 없는 이 세상에 정죄가 되고, 믿음의 방식이 옳다는 인증이 되어야 할 줄로 밉습니다.

 

은혜로 가족 여러분! 이렇게 사도 바울은 부활이라는 사실과 거기서 나오는 구원과 구원의 삶이라는 사실에 서서 부활이 없다면 이런 사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설명해보라! 고 도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은혜로 가족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부활의 사실, 그 부활에서 경험한 구원이라는 사실에 서시기 바랍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토대로 하여 부활이 없다면 내가 구원 받은 것, 내가 이 세상과 달리 경건하게 사는 것을 설명해보라! 이렇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시고, 그 신앙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부활의 증거와 증인이 되시도록 지금도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이 새롭게 만나주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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