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물어물어 찾아가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까일라브네 베이는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과시 “이멜다의 보석”이라 할 만했습니다.
지난 주간 아들의 졸업을 보기위하여 마닐라에 갔었습니다.
- 루손섬은 대개 해변의 모래
화산재의 영향으로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멜다는 이 곳에 저 유명한 보라카이의
산호초모래를 함정으로 실어다가
화이트비치를 만들었다 -
- 이 아름다운 스페인풍의 리조트 넘어 아득히 드럼으로 불리우는
콘크리트 요새가 보인다. 잘라진 방파재 넘어
네모꼴의 검은 물체가 마닐라만을 지키려고 만든 인공요새이다. -
아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필리핀에 갔습니다.
말이 좋아 유학이지 교회가 어지러워
국내에서 교육할 여건이 되지 못해 선택한 필리핀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차례로 필리핀에 보내 두고 6년간 단 한번 아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오월은 필리핀에서 가장 더운 여름 방학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물론 선교사들도 귀국하지만
아이들도 형편을 생각해서 두 번 밖에는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진짜 먼 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고
그러면 다시 아들의 졸업을 보는 것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딸이 혼자 마닐라에 남게 되어서 마닐라에 갔었던 것입니다.
마닐라에서 아이들의 학교와 시내의 명소들을 돌아보고 반찬 거리등을 챙겨주고 졸업식을 본 다음, 추억을 만들 장소를 찾다가 마닐라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까일라브네 베이에 가서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필리핀을 몇 번 다니면서도 좋아하는 망고가 열린 것을 본적이 없었는데 때가 마침 망고 철이어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마을과 거리, 그리고 농장의 우거진 망고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 신기하고 이국적었고 남국의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차를 렌트해서 마닐라에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곳을 물어물어 네 시간여 만에 도착한 까일라브네 베이는 고즈녁 하게 밀림에 둘러싸여 남국의 햇살아래 빛나고 있었습니다. 밀림이 우거진 높은 산을 넘어서 산등성의 경비초소에서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까일라브네베이는 모두의 탄성을 울리게 했습니다. 경비초소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그 아름다움에 젖었다가 등성이를 돌아 내려와 경내에 들어서자 고적한 길에는 밀림에서 나온 원숭이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고 이름 모를 커다란 새들은 정적을 깨며 숲 사이를 날며 이곳의 자연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 했습니다.
지금은 일반에서 공개되어 있지만 본디 이곳은 이멜다의 별장이었습니다. 절벽이 양팔로 안을 듯한 지형, 그리고 뒤편에 솟은 높은 산허리에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천혜의 요새지에 이멜다는 스페인 풍의 하얀 리조트를 짓고, 방파제를 쌓고 수영장을 만들고 본래 검은 모래 해변을 함정을 동원하여 저 유명한 보라카이의 산호모래를 실어다 빛나는 화이트 비치로 만들어 지인들을 불러 즐겼던 곳입니다. 후일 피플 파워로 마르코스 내외가 망명하는 비행기에서 이멜다가 이곳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을 만큼 이멜다가 그녀의 어느 보석보다도 아낀 곳이라고 합니다.
아이들과 점식식사를 한 후 그 바다에 몸을 잠그니 바다 한가운데 함정처럼 보이는 드럼이라 불리우는 콘크리트 인공 요새 뒤로 코레히도 섬과 반탄 반도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형이 올챙이 모양인 코레히도 섬은 마닐라만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여기서 스페인과 미국이 싸웠고, 제2차 대전시 이곳을 사수하던 미극동군이 당시 독립을 추진하던 필리핀군과 함께 일본군과 피의 격전을 벌리다 바탄반도로 퇴각하여 지구전을 펴다 맥아더가 워싱턴의 명령을 따라서 밤중에 코레히도에서 조그만 어뢰정으로 마닐라만을 빠져나와 호주로 탈출한 곳입니다. 맥아더가 탈출하고 남은 미군은 결국 일본군에 항복하고 포로가 되어 저 악명 높은 바탄의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미군과 필리핀군 7만 5천여명이 이동을 시작했으나 자기들의 보급도 부족한 일본군은 이동하는 포로들에게 거의 물과 식량을 공급하지 않고 낙오자는 촘검으로 죽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포로는 4만 5천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역사는 "바탄의 죽음의 행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 아름다운 조망의 수영장 저 너머로 코레히도섬이 보인다-
이 피어린 역사의 현장이 건너다보이는 자리에서 이멜다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부와 향락을 누렸다는 것에 통한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피어린 코레히도 섬과 바탄반도를 보면서 얼마든지 조국을 생각하며 교훈을 받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강대국의 부침이 서린 그곳을 보며 인생의 부귀영화가 뜬 구름 같음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멜다는 교훈을 받지 못해 자신과 조국을 망쳤고 그녀가 만든 까일라브네 베이는 일반에 공개 되어 나 같은 평범한 이도 몸을 잠그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이는 짐승 같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루해를 보내고 까일라브네 베이의 하얀 리조트에서 낙조를 보며 하루 쯤 쉬며 아이들과 남국의 밤의 별을 보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선 귀가 길에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까일라브네 베이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아쉬움이 아이들의 가슴에도 까일라브네 베이에서의 한나절이 평생 잊을 수없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추억이 아이들의 인생에서 은혜와 절제를 배울 수가 있게 한다면 그날 하루의 까일라브네 베이는 더욱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프라톤의 지론대로 행복이란 차고 넘치도록 풍족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데, 아니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듯한데 있기 때문입니다.
- 돌아오기 전 차를 기다는 부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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