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27장 첫 부분에서 베드로의 회개와 대조를 이루는 주님을 판 유다의 종말을 듣습니다. 이 유의 말로를 다룬 기사에는 주님을 판 유다에 대해서 격한 감정이나 저주의 언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 이후 사도를 보선할 때에 불가피하여 단 한 번 유다를 거론 했을 뿐입니다. 이게 주님을 판 유다를 대하는 사도들의 인격인 것입니다.
이 유다의 종말의 기사는 유혹자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멸망시키며, 타락한 종교인들의 위선을 그대로 폭로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를 유혹했던 사탄은 유다가 유혹에 빠져 무죄한 주님을 넘겨준 것을 뉘우치자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가 당해라”고 부려 먹고 사망에 버리는 것입니다. 무죄한 주님을 살인한 타락한 종교인들이 유다가 반환하는 돈을 부정하게 여기는 가증함을 보십시오.
따라서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행려자의 묘지는 자기의 목자이신 예수와 그 은덕에 배은망덕하고, 대적하는 자들의 불신앙과 종말에 대한 영구적인 기념비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회개가 회개하는 죄인들이 받을 은혜에 대한 기념비라면, 이 피밭은 회개치 않는 자들이 처할 무서운 운명의 기념비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가 이 기사로 강조하는 것은 이 유다의 배신과 유대 지도자들의 위선까지도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드라마의 성취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속의 드라마를 이렇게 주도적으로 이끄시고 성취해 나가셨습니다.(마26:24) 그러면 우리는 긍정적으로 주님의 구속의 드라마에 쓰임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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