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4,20
본문 : 고전15:50-56
말씀 : 라인권 목사
복된 부활절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건,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산 것 같이 너희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신 것 같이 우리도 다시 살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사람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이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활을 교리가 아니라, 실제로 확신하고 부활의 소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이 그렇습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부활의 날의 일들을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내다보며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사도 바울의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살펴보며 우리의 부활 신앙과 소망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 썩고 죽을 것이
먼저 사도 바울은 어떤 가운데,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 부활을 확신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이를 보여 주는 말씀이 53-54절의 “ 이 썩을 것이”라는 말씀과 “이 죽을 것이 “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썩을 것, 이 죽을 것이라고 했을 때에 삼자적인 관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면서 이 썩을 것, 이 죽을 것이라고 한 겁니다. 이 인식이 42-44절은 더 구체적입니다,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후패와 죽음을 사도가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가끔 사람 이름이나, 물건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썩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바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육신과 삶이 욕되게 느껴집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을 남의 손을 빌릴 때 얼마나 자신이 구차하고 욕되겠습니까? 추우면 감기 들고, 더우면 쓰러집니다. 나이 들면 자기 몸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됩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육신인 겁니다. 이 인식이 사람을 허무주의, 염세주의 향락주의에도 빠지게 하지만, 이 인식이 신앙에 이르게 합니다. 이 인식이 없으면 신앙도, 천국에 대한 바람도 없습니다.
썩고 죽을 것에 부활을 말해 줌
그러면 사도 바울은 이 썩고 죽을 것에서 부활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소망했습니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단언합니다. 즉 자기의 썩고 죽어가는 육체에게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죽을 자기에게 죽지 않는 부활을 말해 주고 부활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42-44절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 썩을 것, 죽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신의 몸을 무덤에 심으면 썩지 않는 몸, 영광의 몸, 강하고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살 것을 말해 주고 이 부활의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확고부동합니다. 확신과 소망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약하고, 욕되고 썩고 죽을 몸에서 부활을 보는 겁니다. 그 육신이 썩음과 죽음을 인지할 때에 그 썩을 자기에게 부활의 날을 보며 부활로 격려하며 부활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갔다는 겁니다.
제가 지난 2월에 왼쪽 팔과 어깨가 아파서 의료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어깨 밑 팔뼈에 동전만 한 흰 점이 있습니다. 의사가 이걸 보더니 큰 발견을 한 것 같이 뭐라고 자기 혼잣말하다가 뼈암일 수 있으니 엠알아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꼭 뼈암이었습니다. 돌아와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가 서울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 검진을 예약하고 예약 날짜를 기다리다가 철원의 수도원을 갔습니다.
밤 12시경에 본당 올라가 기도하려고 앉으니 팔이 쑤셔 옵니다. 죽는 것 두렵지 않습니다. 제 원이 있다면 교회 부흥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욥의 말대로 학대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서글퍼지고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을 “부활하신 구세주”를 부르며 은혜를 받고 내려왔습니다. 설 지나고 결과 봤는데 암이 아니랍니다. 그러므로 약함과 욕됨과 썩음과 죽음을 느낄 때에 그 썩고 죽을 자기에게 썩지 않고 죽지 않을 부활을 말해 줍시다. 부활로 자기를 격려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망을 밟고 승리를 노래함
셋째, 사도 바울은 이 부활의 확신과 소망으로 죽음에 사망선고를 하고 사망을 폐기 처분하고 부활로 살아나갔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합니다. 이 말은 시입니다. 이 노래는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를 노래한 겁니다. 사25:8을 봅시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이 예언은 계20:14의 일을 미리 본 것입니다. 주님이 사망과 음부를 불 못에 던지신 결과로 “사망이 다시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도 바울은 이 성취를 보며 사망이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사망에게 엄숙하게 사망 선고하고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고양이 있으면 나오라고 해! 이런 공허한 장담입니까? 사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56ㅡ57) 사도는 이 승리를 믿고 당당하게 사망을 비웃고, 사망에 사망선고를 하고, 사망을 짓밟고, 사망을 폐기 처분해 버렸습니다. 이걸 부활의 권능이라고 합니다. 이 권능으로 죽음을 이기고, 썩을 것으로 심어 썩지 않는 몸을, 약한 것을 심어 강한 것으로 살리고, 욕된 것을 심어 영광스러운 영의 몸을 만들어갔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사신 줄로 믿습니다.
몇 년 전 유월에 저희 집안에 경사와 초상이 한 날에 났습니다. 큰집 장형 형수가 제 조카딸 혼인날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년 가까이 항암 하다가 5월에 넘어져서 대퇴부가 부서져 위독해졌습니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병원에 심방을 했습니다. 거기서 요14:1-3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 말씀을 읽어 드리고 간단하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는데, 처음 들어갈 때 인사에 반응이 없던 형수께서 울면서 큰 소리로 ‘목사님! 저 천국 가게 해주세요!’ 하셨습니다.
제가 이 소리 듣고 속으로 할렐루야! 했습니다. 정말 구원의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천국 보내는 건 전문가입니다, 롬10:9,10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천국 가기에 충분한 믿음이라는 것을 단 한 한마디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장례를 지낼 때에 목사님 다녀가시고, 어머니가 평안해지셨다는 것이 조카의 고백입니다. 저는 그분 분명히 구원받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결국 죽음에 직면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죽음은 형벌이 아니라 성화의 수단입니다. 재림 나팔이 울릴 때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 같이 썩음과 죽음에서 이 부활계를 봅시다. 우리도 사도 바울 같은 부활의 확신과 소망으로 사망을 폐기 처분합시다. 이 부활의 권능으로 꼭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죽지 않고 죽어도 다시 살 살 자와 같이 삽시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썩을 것 죽을 살려 나갑니다. 이 부활의 삶으로 부활의 날에 이르시기를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강 론 >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이렇게 되게 하십니다! (0) | 2025.01.07 |
---|---|
하나님의 사중 계획으로 하는 송구영신 (0) | 2025.01.03 |
기쁘다 구주 오셨네! (2) | 2025.01.03 |
세어 헤아린 맥추절 감사 (0) | 2024.07.08 |
들보 그 인간의 사악함 (0) | 2024.06.11 |